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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현시창.
... 뭐야 다짜고짜 결론부터
논란이 된 원문은 'B형 남자와 결혼하면 안되는 이유' 수준에 불과하여 읽을 가치가 없지만, 그에 대한 수많은 비난들이 따르는 의식의 구조는 우리들의 '구시대적 가치관'에 대한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반박을 보자.
처녀가 있다해도 너랑은 결혼 안하거든?
일견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그닥 좋은 반박은 아니다. 이건 결국 처녀 선호는 개인의 선호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걸 방증한 셈인데,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깔 만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처녀 선호의 문제는 '상대가 중요'하다는 점에 있다. 많은 공감을 받은 다른 글을 보자
당신보다 더 잘난 남자들한테 가지 뭐하러?
결론은 상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처녀를 선호하는 남자는 찌질하다는데, 여기서 만약 '구준표'가 출동하면 어떨까?
구
준
표
!!
남자는 불타는 눈으로 여자에게 말한다. '너의 과거마저도 내것으로 하고 싶어. 네게 다른 남자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어' (신조마유삘인데 이거)
그러나 금잔디는 백혈병으로 쓰러지고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구준표. 고.. 골수가 닮았다 우와앙! 그리고 밝혀지는 둘의 출생의 비밀... (거기까지)
'나의 준표는 이러치아나!' 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재벌가'라면 어떨까? 처녀성 논란의 우울한 이중성은, 그것이 결국은 '가격'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데 있다. 평범한 남자의 처녀 선호는 '시대 파악을 못한 사람의 주제넘은 취향'이 되지만, 명망가 집안의 처녀 선호에 대해서는 '이름있는 집안의 며느리가 될 사람에게 옛날 남자친구 따위가 과거를 들먹이며 가문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사태를 예방 운운' 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준비되게 마련이다. 처녀성은 결혼시장에서의 적지않은 프리미엄이고, 대다수 중산층 남성들의 비처녀에 대한 관용은 고가의 사치품에 대한 한계 효용의 가치 평가를 거친 결론에 대한 암묵적 합의의 정치적 승화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보통 남자의 처녀 선호는 '찌질함'으로 온갖 뒷담화의 대상이 되지만 재벌가와 혼인을 하게 된 여자가 처녀성을 요구받게 될 경우는 처녀를 '연기'하거나 심지어는 '수술'로 '만들'고는 하는 것이다.
처녀성 담론의 구조는 남성의 경우로 치환하여 해석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함락된 적 없는 성과 돌격한 적 없는 병사의 비유에서 보듯 남성의 동정 따위는 처녀성에 비하면 아무 가치가 없다. 좀 더 적절한 구조는 아래와 같다.
'강남에 자기 명의의 아파트 한 채 없는 남자와 결혼하면 안되는 이유'
어떤 남자들의 경우에는 처녀를 '딱히 구분하여 선호하지는 않는' 수준을 넘어서 '싫어'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어떤 여자들이 '비싼 아파트를 가진 부자 남자'를 '싫어'하는 이유와 완전히 동일하다. 통계적으로 혼외 임신은 적어도 광우병보다 수백 배 확률이 높고, 그래서 처녀성 프리미엄은 신랑이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 정도의 '현실적'인 근거 정도는 달려 있게 마련이다.
처녀성 담론이 여성을 성적으로 왜곡하고 차별하며 구속하는가? 반드시 그런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여성이 주 소비 계층인 각종 포맷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재벌가'의 처녀성에 대한 요구는, '정숙함'으로 포장되어, '부유한 상류층의 품격'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팔리며 또 선호되고 있다. 비처녀에 정치적으로 관용하는 평범한 대학생과 집안까지 나서서 며느리될 사람의 '품격'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재벌가 킹카 중 누가 더 선호되고 또 소비되는가? 처녀성은 남자친구들이 구분조차 못하고 거의 가치를 두지 않는, 여자 친구의 변한 헤어스타일 같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여성 위주의 드라마에서조차, '과거있는 여자 주인공'을 받아들이는 재벌가의 주인공 남자는 '과거에 대한 관용'을 '로맨틱한 선택'이자 '결함을 용납하게 하는 사랑'의 상징으로 그려지곤 하는 것이다. 처녀성은 분명 남성들의 욕망의 투영이지만, 반면 여성들에게는 결혼 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에 이에 대해서 여성들의 이해 관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처녀는 비처녀에 비해 여성들 사이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가져가게 되고, 때문에 남성들의 처녀 선호를 불쾌히 여기는 여성들도 '어머니'가 되면 자식들에게 스스로를 소중히 할 것을 주문하며 결혼 상대에게 과거를 먼저 시시콜콜히 밝히는 것이 '진보적인 쿨함'의 상징으로 여성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으로 권장되지는 않는 것이다.
'선호'preference는 차별화와 배제를 전제하기 때문에, 공정과 평등을 고귀하게 여기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 이념에는 배척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또한 선호와 기호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차별화와 공정은 서로 이중적인 형태로 동거할 방안을 찾게 된다.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인종 차별에 적극 반대하지만 이웃에 흑인이 이사를 오면 백인들 마을을 찾아 교외로 떠나고, 공교육을 지지하지만 내 아이는 유학을 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모님의 표현에 따르면, 소비 사회의 승자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최종적 미션을 위하여 페미니즘은, '연애 및 결혼의 시작부터 부유함을 보장받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의 부를 보유한 부모 세대의 시대에 맞추어 옷만 갈아입은 '세련된 가부장제'와 평화롭게 타협한다. 처녀성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중산서민층 남성을 위해서는 처녀성을 고루한 이데올로기로 치부해 버리는 현대적인 캐주얼 이데올로기가 제공되고, 구매력이 있는 상류층에게는 정숙함과 높은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세련되게 포장된 프리미엄 메뉴가 마련된다. 블로고스피어에서 '미성년자가 섹스 이야기를 보는 게 무슨 문제인가?'를 묻는 '당돌하고 쿨한 아가씨'와 '타인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그 대가는 저렴하지 않답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세요 아가씨야' 라고 타이르는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남자' 전혀 상반되는 두 블로거가 똑같이 지지를 받는 모순이 어떻게 성립하는가? 이들이 오프라인상에서 만나면 서로의 이질적인 가치관을 통해 언성을 높일까? 천만에. 이들은 아마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로 서로를 존중하며 악수를 나눌 것이다. 페미니즘과 세련된 가부장제는 처녀성 이데올로기로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계층을 나누어 다양한 메뉴를 마련하여 공존한다.
처녀성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가 '근거'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것'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처녀성을 보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전략이며 오히려 잠자리를 원하는 남자친구와의 갈등만 빚을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동등한 것은 모두가 가치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대로, 처녀성의 보존은 최소한 '비처녀들과의 경쟁에서 결혼시장에서의 프리미엄을 갖을 수 있는' 처녀 여성에게는 우위 전략이며, 그러나 정치적으로 공정한 사회에서의 공존을 위한 법칙과 예의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의 전략은 '남성들의 처녀성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을 비판' 하되 '나는 처녀로 남는' 것이 된다. 남들이 학벌 사회를 비판한다고 나도 따라서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그냥 바보짓에 불과하다. 그건 '현대 사회에서의 융통성'이다. 당연히 남자들도 '내 여자로선 좀... '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비처녀에 대한 관용'은 그가 '정치적으로 공정함'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매너가 된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과시적 소비로서의 페미니즘'에서 말하듯, '중산서민층 남성의 비처녀에 대한 관용은 타협과 포기의 결과물'이고 상류층 남성의 비처녀에 대한 관용은 '정치적으로도 진보했음으로 보여주는 지적인 여유'라는 차이가 있긴 하다만.
말이 길어졌다. 결론을 짓자. (처음에 했잖아)
@ 결론: 재벌 킹카남이 되어 종심의 도를 깨닫도록 하자 (응?)
@ 진짜 결론: 나도 낚여씀 파닥파닥
물론 나도 누군가가 '누님과 결혼하면 안되는 이유'라는 걸 싼다면 시밤 전번까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