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망언'은 '본심'과 동의어다. 인간은 인종과 성을 차별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함께 살아야 하는 본성을 갖고 있기에, 그리고 후자가 더 급박했기 때문에 분열의 요소를 교육과 제도를 통해 억눌러왔다. '가식'이라고 힐난을 받기도 하는 '예의'란 그러한 사회적 도구이다. 흑인 아시아인과 어찌됐건 부대끼며 살아야하는 세상을 유지해야 하니까.
'솔직한 세상'에서 '나는 혼전순결과 같은 억압논리에 반대합니다'와 같은 '현대적 정론'은 '너도 사실은 처녀가 좋지?'하는 '솔직함'앞에 '찌질'해진다. 보수주의자들이 온라인 키워에서 밀리는 이유는 '정론 페미니스트'가 '오프라인에서는 결혼할 때 처녀따지는 넘'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입'으로 하는 정론에 맞설 도리가 없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의 마지막 남은 무기는 '감춰둔 솔직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돈'이 된다.
'솔직한 인간'은 거짓말을 하고 (응?) 바람을 피우고 살육을 즐긴다. 솔직한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굶어죽고 유색인들은 노예로 팔려다녔으며 일부 남자는 다수 여자를 농락하고 나머지 남자는 고자가 되었다 (고자라니!) 우리는 그런 세상을 좋게 말해 '과거'라고 하고 솔직하게(?) '야만'이라고 부른다. 나는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이지만, 아무리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곤 해도 백주대로에서 인간의 사지를 말에 묶고 다른 사람이 팔다리의 근육을 하나하나 톱으로 자르는 스플래터쇼를 '안 하기'로 결정한 인간 사회의 '반 본성적' 결단을 존경한다. 어린아이에게는 노동이 아니라 교육을 시키기로 한 '비 효율적'인 합의에 감탄한다.
모두가 공평한 수준으로 부유한 세상에 대한 열망은 허망하고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의 꿈은 위선이다. 물론 이 결론에는 '당분간'이라는 양보가 붙기는 하나 그 기간은 인간의 본성 자체가 '진화'할 때까지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의 '가식적'이고 '비 효율적'인 '문명'이 '리셋'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은 불과 몇백년만(!)에, 흑인들을 잡아와서 노예로 부리는 세상에서, 흑인들이 이주해 오면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내쫓는 세상으로 그리고 기존의 백인들이 짐 싸서 나가는 세상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같이 사는 세상'이 언제 올 지는 모르지만, 흑인들과 같이 안 살기 위해서는 '내가 이사 가야'하는 세상이, 대놓고 '솔직하게' 총을 쏴서 내쫓는 세상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