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혼 모델
1)
가장 '없어 보일'때가 언제인가. 옷깃을 스치고 이유를 5가지 대지 못했을 때? 바로 당면한 문제에 절박할 때이다. 반면 가장 있어 보일 때는 상관없는 문제에나 신경쓰는 모습을 보일 때이다. 저축이 최고의 사치재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대인배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체의 최우선 미션인 생존과 번식 문제에 신경을 끄고 휴가때나 가 볼까 말까 한 지잡산의 도롱뇽에나 신경쓰는 게 옳은 길이다. 결혼 시장과 외모 떡밥을 다루면서 없어 보이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은 본인이 학벌주의에 별로 피해를 받을 일이 없는 신장 181cm 의 도시남자임을 까고 들어가는 것뿐이겠다. 물론 게임에는 블러핑이라는 게 있어서 하나는 무심한 척 눈팅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펙을 구라로 까는 방법이다. 내가 중학교 때 효도르 코피내봤거든? (로저스도 코피내던데 그후로..)
완전경쟁시장은 공급자의 지옥이다. 조건에 대한 여성의 직접 탐색을 사회적으로 압박하게 되면 정보 탐침에 대한 연막을 피울 수 있다. 고객은 시간과 탐색 자원의 기회 비용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타협하게 마련이다. 나 혼자만 조건탐색에 초연하면 있어보이는 시크한 엣지남이 되지만 모두가 초연하게 되면 일제고사 점수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일렬로 꿰인 중딩 꼴이 된다. 원래 세상이란 이런 협력과 배신의 게임 하에서 돌아가게 마련이다. 결혼시장의 66인치 세대여 우유를 내려놓고 짱돌을 들라 (?)
2)
상승혼은 결혼을 통해 신분이 상승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일반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새로울 것도 감동할 것도 없으나 사실 백조의 얼굴보다 발이 더 재미있는 법 아니겠는가. 지위와 차별의 층위가 복잡하기 때문에 나무와 버섯의 생태계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남녀를 제도적으로만 평등하게 한 사회가 있다. 제법 돈은 있는 듯하다. 이 사회 최고의 여성은 이 사회 최고의 남성과 동등한 능력치 스탯을 찍었지만, 하느님과 함께 어디에나 계시는 유리천장 덕에 그녀의 앞에는 남자가 100명이 있다. 즉 그녀가 누리는 효용은 혼성 랭크 기준으로 101위에 불과한 것이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남녀 차별의 고통은 상류층에서 더 심하다고 하기 때문에 (CEO나 내각의 구성 성비는 비정규직이나 백수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자주 보도된다) 상위 랭커들을 모델로 삼은 건 내 탓이 아니라 다 언론 때문이다. 탑랭커의 그녀가 천지가 개벽되기를 하세월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스탯에 대한 보상을 얻는 빠르고 좋은 방법은 남자 탑랭커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남자 탑랭커가 차별빨로 얻은 효용을 정당하게 나눠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남녀를 차별하는 사회가 다른 건 차별을 안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니 남자 랭킹 2위도 1위와 동등한 스탯 보유자인데 (같은 에디터를 쓴듯...) 홍진호라서 흑인이라서 2위로 밀렸다. 남자 1위가 사회의 구조 때문에 더 가진 부당한 효용은 여자 1위도 남자 2위도 나눠 갖고 싶어 한다. 잘라라 세로로. 남자 랭커 2위가 1위의 효용을 나눠갖지 못하게 된 이유는 안타깝게도 이 셋이 모두 스트레이트라는 데서 왔다. 이런 불공평할 데가! 남자는 여자를 멀리하고 호모가 되는 게 낫습...
또 있다. 이 사회는 평등을 법전에만 처박아둔 주제에 나름 복지를 한답시고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었던듯) 남자 상위 탑랭커에게서 세금을 걷어가서 슬럼가의 노숙자에게 나눠주었다. 때문에 와이프인 여자 탑랭커는 그녀가 정당하게 받았어야 할 차별에 대한 보상의 효용에서 일부를 희생하게 되었다. 물론 세금은 소득에 대하여 발생했기 때문에 와이프도 세금을 냈지만 남편이 (부당하게) 더 버는 탓에 세금을 더 내고 만 것이다. 이 부부의 소득의 차액은 남녀차별로 인하여 발생한 부당한 이득인데 왜 피해자인 와이프가 아닌 국가가 가져가는가? 단지 남편이 돈을 더 번다는 이유로? 부유층에 깊이박힌 대못 빨리 뽑아야되는데...
탑랭커 여성이 정당하게 받았어야 할 보상은 노숙자에게 일부 이전되고 말았다. 그녀의 성평등에 대한 권리는 노숙자가 받을 사회적 차별과 위험에 대해 양보해야 하는가? 이러한 비유가 너무 일방적이라는 평가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랭크 편차를 줄여서 섞어 보자. 혼성 랭킹 1000위 남자와 1400위 여자의 결혼은? 13만 2500위 남자와 66만 8793위 여성 부부는? 상위 몇 명의 여성이 인종, 지역, 가난, 추형 및 종교 등에 대한 몇 명의 차별에 남녀차별로 인한 피해의 보상을 양보해야 할까? 모든 면에서 흰색 벤틀리탄 왕자인 남자 탑랭커의 효용은 여성, 흑인, 무슬림, 노숙자, 에이즈 환자 및 환빠(...) 등에 대해 어떤 순위로 배분되는 것이 맞나. 이런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실무자 대신 사장님이 되는 거다. 승리의 땅.
3)
결혼은 또한 가정을 꾸리고 인구를 재생산하는 등 사회 유지의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사람이 많게 되는 사회적 결합이다. 양육이라는 사회적 의무는, 이번엔 거꾸로다. 밑에서 몇위까지 면제(..)되나. 아이를 가질 권리는 몇위까지 가질 수 있나. 자연 성비와 남아 선호가 남자가 더 많은 사회를 만들었다. 게다가 일부일처제는 말뿐이고 남자 탑티어들은 이혼과 재혼을 통해 여러번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 시장에서 남자 루저 -> 잉여 (한글을 씁시다) 는 항상 생기게 마련이지만, 이들은 코나미와 TMA(..)가 챙겨줄 것이므로 돈케어.
양육의 권리는 상대적으로 더 재미있는 경우이다. 탑랭커 부부는 루저 부부들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양육의 권리를 갖나. 문제는 루저들에게서도 아이는 태어난다는 것이다. (역시 남자는 여자를 멀리하고 자...) 탑랭커 부부는 개인비행기로 휴가를 갈 때마다 세 명의 베이비시터와 아홉 명의 튜터를 붙여줘야 되기 때문에 양육이 매우 힘들다. 이때문에라도 상승혼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말이나 타고 다니던 시절에도 아이는 태어났다. 더 많이. 물론 그 시절에는 아이가 좀 더 저렴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여성은 여러 모로 차별을 받고, 기대할 수 있는 소득도 적기 때문에, 상승혼이 반드시 필요하며, 배우자의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하다.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공짜가 아니다. 맞다. 그런데, 그 여성보다 더 낮은 소득에다가 소득이 아예 없는 아내를 갖은 가장도,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해 왔다. '유리한 선택지'도 '필수 요소'로 인용될 수 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기부하는 대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야겠어. 탑랭커 여성도 물론 앞에 백명이나 되는 남자가 있다. 그녀는 그녀의 세상에서 피해자이며 그 차별을 보상받을 권리도 있다. 그 권리를 모든 여성이 결혼하고 남은, 노숙하는 무슬림계 흑인 에이즈 환자(...) 가 보는 앞에서 주장하는 것이 좋은 시선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존을 위한 좋은 방법이 있다. 여성의 인구를 초과하는 남자 아이는 하위 계층부터 낙태. 이렇게 하면 남성 우위 사회라면 아무리 최하위 여성이라도 상승혼을 기대할 수 있고, 남자는 잉여분이 남지 않는다. 윈윈. 고양이님을 키우는 데도 자격이 필요한데 인간 따위를 아무나 낳아서 되겠는가. 아니 고양이이기 때문에 더 책임있게 양육하고 인간 아이 따위야 몸가는 대로(...) 낳아대도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4)
재화의 분배라는 측면에서도 상승혼 모델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만약 탑랭커 남성이 최하위 여성과 결혼하고, 탑랭커 여성이 최하위 남성과 결혼하면, 놀라운 재화의 분배가 한순간에 일어난다. 아무리 잘 설계된 공산 국가라도 이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100개의 직업과 200명의 남녀가 있는 사회에서 직장인은 직장인과 결혼하지 무직자와 결혼하여 직업 하나당 두 명이 '실제로' 분배되는 결과를 빚지 않는다. 직업이 200개로 늘어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 당신. 아쉽지만 제 블로그의 테마는 현시창~ 직업이 200개가 되자 인구가 400명이 되었답니다 (...)
게다가 맞벌이 고소득자일수록 소득을 '많은 아이'에게 분배하는 경향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소수의 아이들에게, 맞벌이로 두 배가 된 소득을 집중하여 총력전을 펼치게 되기 때문에, 무직자 집단은 더욱 뒤처지고, 교육열과 고급 부동산의 가치는 더욱 올라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혹은 일부러 넘어가는 양극화의 한 중요한 요인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가. 그럼에도 우리가 이제 와서 사륜 자동차와 무선 통신을 포기할 수 없듯,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맞벌이와 경쟁이 가속화되는 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가 그 속도만을 애써 바짓가랑이 붙잡아가며 적응해가야 하는 현상이 세 가지 있는데, 저출산, 양극화, 그리고 지구 온난화. 어차피 모든 짚신에 짝이 있었던 시절은 역사상 단한번도 없었고, 인간의 평균 수명과 아이가 5살 생일을 맞을 확률 그리고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계속 높아졌으니, 거시적으로 볼 때 크게 잘못된 것은 없는 셈이 아닐까.